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장시간 계획했던 추자도 라이딩 날이었으나, 추자섬으로 들어가는 선박은 있는데 나오는 선박이 없다 하여 결국 여객터미널 앞에서 추자도 라이딩 포기, 지난 토욜날 우천으로 폭파한 저지리 인근마을 투어로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제주시 날씨는 꿀꿀한 것이 비날씨를 예보하고 있어 혹시나 하고 저지리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왠걸 저지리 쪽은 다른 나라처럼 쨍한 가을 날씨를 보였습니다.
어쨋거나 바리바리 싸온 간식과 푸짐한 점심으로 한나절 때운 서쪽 라이딩 길이었습니다
1. 저지(楮旨)리 마을
한라산 서북쪽 중산간 해발 120m 고지에 위치한 저지리는 한경면 중산간에 위치해 있고, 저지오름(속칭"새오름")을 중심으로 촌락이 형성되었으며, 북동쪽에는 한림읍, 남쪽에는 대정읍과 안덕면에 인접해 있는 중산간 핵심 마을이다 설촌은 약 400년 전에 물골(지금의 수동(水洞)) 경내의 용선 달리는 전주 이(李)씨가 정착한 것이 설촌의 시초라 전해지고 있다.
서기 1702년(숙종28년)경 제작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 의하면 마을이름은 당지(堂旨:당루)로 표기되었으나 18세기 초부터 저지(楮旨)라는 마을 명칭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용달리, 계릉리, 계지리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다고 구전(口傳)되고 있으나, 4. 3사건 당시 향사와 마을 사적들이 소실되어 확실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 저지예술인마을
1. 조수(造水)리 마을
- 조수 1리
제주시에서 서쪽 중산간으로 약 35km 지점에 위치, 고산에서 동쪽 중산간 약 5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설촌시기는 약 1610년 이조명종때 전주이씨가 속칭 용선달리라는 곳에서 은거한데서 그 유래를 찾고 있으며 그 후, 여러 씨족들이 모여옴에 따라 마을이 커지게 되고 리명을 '조호수리'라 불리우다 1820년 조수리로 개명하였고 1974년 4월 행정구역 조정으로 조수1리와 조수2리고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 빈청당(賓請堂 손청당)
빈청당(손천당)은 조선시대에 목사나 관찰사들이 마을에 찾아오는 등 손님을 맞이할 곳으로 꾸며 놓은 장소이다.
또한 마을의 평안과 가족들의 무사와 풍년을 기원하던 곳으로 1년에 2회에 걸쳐 天祭(마을제)를 지내오던 곳이다.
■ 돗곳물
현 조수리에서 서쪽으로 약 500m 쯤 떨어진 동산 밑에 넓고 오목한 평지와 분지로 형성된 곳으로 옛날엔 나무와 숲이 우거지고 산짐승들이 많이 살아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산돼지가 많아서 밤, 낮을 가리지 않고 먹이를 얻기 위하여 숲속을 헤메어 다니며 주둥이로 땅을 파고 두더지를 잡아먹었고, 이때 파헤친 장소에 물이 고이게 되었고 물이 고임에 따라 큰 연못이 되었다고 한다.
하여 멧돼지가 코와 주둥이로 파서 물이 고이게 되었다고 해서, 이 곳을 돗곳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두강봉(頭降峰)
두강봉(頭降峰)은 "두강악(斗罡岳)"이라고도 불리며 마을 사람들은 오름의 모양이 독새기(계란)처럼 생겼다하여 "독새기오름"이라고도 부른다.
두강봉은 멀리서 보면 영락 없는 큰릉(무덤)처럼 보여 일부 학자나 마을 주민들은 인위적으로 만든 무덤이 아닐까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경사면을 가지고 있는 원추형 화산체를 띠고 있으며 곳곳에 붉은 화산분출물들이 많이 산재해 있어 전체적으로 볼때 화산분출로 형성된 화산체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두강봉(두강악)"은 현재 "미등록오름"이으로 오름숫자인 "368"개의 오름에 포함 되어 있지는 않다
- 조수 2리
1864년 제주양씨(성명미상)가 식수와 농토를 얻기 위해 입주하기 시작하였으며, 토질이 붉고 점토질이어서 비만오면 물이 흘러 지반이 얕은 곳으로 잘 고임으로 마을 명칭을 주지동(朱池洞. 속칭 '불그뭇')이라 하여 설촌되었으며,
948년 4.3 사건 이후 “신성동”이라는 명으로 재건되었고, 1974년 4월 조수리에서 분리되면서 조수 2리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1974년 4월에 행정구역 개정시 행정상의 단일부락으로 독립하면서 "신성동"이 조수2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름.
3. 낙천(樂泉)리 마을
낙천(樂泉)리는 제주시 한경면 소재지인 신창리에서 동쪽으로 7km지점의 중산간에 위치하며 동쪽에는 저지리와 청수리, 남쪽에는 산양리, 서쪽에는 고산리, 북쪽에는 조수리가 인접해 있습니다.
또한 마을 5km 이내로는 동쪽의 저지오름, 서쪽의 당산봉, 남쪽의 새신오름, 북쪽의 관포오름등 크고작은 오름들이 조망되고 있는 마을입니다
하늘이 내려줬다는 낙천은 천가지의 기쁨을 간직한 마을이라는 의미도 있고 아홉 가지의 즐거움이 있다하여 낙천리 아홉굿마을이라고도 합니다.
낙천아홉굿마을의 “굿”은 샘이라는 제주어로 낙천(樂泉)리에는 아홉 개의 굿(샘)이 있다는 의미이지만 영어표현으로 아홉 가지의 좋은(nine-good)것이 있어 즐거운 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 낙천 아홉굿 마을 의자공원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에 걸쳐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1000개의 의자를 조성하고 2009년 7월에 전국 의자닉네임공모를 통해 우수작 100명을 선정했습니다. 닉네임 새김작업 후 이들을 초청해 2009년 7월 31일 마을공원 선포식을 하였습니다.
4. 산양(山陽)리 마을
제주시에서 서쪽 중산간으로 50㎞에 위치한 마을로서 서귀포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본리는 당초 청수리에 속해 있다가 1914년 3월에 청수리가 1, 2구로 구분되어 1구는 청수리로, 2구는 수룡동, 연화동, 월광동, 자룡동, 다리왓동으로 행정구역을 분리하다가
1956년 7월 청수리 2구에 속해있던 수룡동, 연화동, 월광동(자룡동, 다리왓동)으로 단일부락을 형성 독립하면서 산양리로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음.
5. 청수(淸水)리 마을
제주시내에서 서쪽으로 45㎞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서 북쪽은 조수 서쪽은 낙천 남쪽은 산양리로 에워 싸여 있는 마을로 맑은 물이 있으므로 청수라 하였는데 설촌시기는 약 1650년경 여러 성씨가 거주하며 설물촌이라 하였다.
처음에는 저지리에 속해 한때 '청효수'로 표기하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청수리라 칭하여 1, 2구로 행정구역을 분리하다가 1956년경 1구는 청수리로 2구는 산양리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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