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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Bike Tour 16(명월리-상대리-동명리-한림리-옹포리)+60

트멍 2024. 2. 18. 14:05

명월-상대-동명-한림-옹포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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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월리(明月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밝은달이라는 고유어로 불리다, 명월진이 세워진 뒤에 명월이라 하였다. 19세기 초반 명월이 마을 이름으로 정착하였고, 20세기 초반까지 서멩월[西明月]이라 하다 1905년 이후 자를 빼고 명월이라 하였다.

 

1300년경 제주에 동·서현을 설치할 때 명월현이 되었다. 1608년 조선시대 방리제가 설치되자 명월은 우면의 소재지가 되었다. 분리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상명리·동명리·금악리를 포함한 마을이었으며, 20077월 제주특별자치도가 되어 제주시 한림읍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현무암과 조면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륙에서 남~서 방향으로 넓게 위치한 마을로 건남천을 중심에 두고 있다.

2006년 말 현재 면적은 5.39이며, 주요 농산물로 감귤이 중요한 소득원이며, 이 외에도 마늘·보리 재배도 활발하다.

 

문화 유적으로는 마을 어귀에 400~500년 된 팽나무 군락지가 있으며, 명월성지와 명월대가 지방문화재로 보존되어 있다. ,서로 옹포리 동명리와 접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2. 상대리(上大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존귀술, 민간에서는 종구실이라 한다. 존귀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며, 19세기 중후반에 상대리로 표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636(인조 14)~1637년의 병자호란 중에 동쪽에 인동장씨, 서쪽에 제주양씨가 거주를 시작하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이후 큰 촌락을 이루어 마을 이름이 대촌리(大村里)로 변경되었다가,마을을 3개리로 분할하여 상대(上大중대(中大)[현 대림리하대(下大)[현 한림리]로 분리하였는데, 상대리만 현 상태로 남아 있다. 20077월 제주특별자치도가 되어 제주시 한림읍에 속하게 되었다.

 

감귤재배가 주 소득원이 되고 있으며 양계장과 양돈장 시설이 있어서 감귤과 축산을 함께 하는 복합 영농 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3. 동명리(東明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진근이다. 진에 가까운 곳이라는 의미이며, 19세기 중후반에 명월진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동멩월[東明里]이라 하였다.

 

용천수가 풍부한 수류천촌(명월리) 등지에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고려시대 제주에 동·서현을 설치하였을 때 서현의 중심지였고, 1608(태조 41)에 방리가 설치되자 동명리는 우면(지금의 한림읍 한경면 애월읍)의 소재지로 행정의 중심지였다. 1858년경 동명리로 개칭되었다.

20077월 제주특별자치도가 되어 제주시 한림읍에 속하게 되었다.

 

한림읍 지역의 상수원이 위치하고 있을 만큼 깨끗한 식수를 확보하고 있다. 예전에는 수류천(水流川)이라 불리 울 만큼 샘이 풍부한 지역이다.

 

전형적인 중산간 농촌 마을로 주요 농산물로 감귤과 양파가 주 소득원이 되고 있으며, 한국전력공사의 화력발전소가 입지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4. 한림리(翰林里)

 

- 한림1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알한술 또는 알한수풀이다. 한수풀[大林]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한자음으로 하대 또는 하대리라고 한다. 한림(翰林)의 한()도 고유어 한[]의 음가자 표기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한림리가 되었으며, 195678일 한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63년에는 현재의 한림3리를 분리하고, 1964년부터는 알한술 지역을 한림1리와 한림2리로 나누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200671일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하게 되었다.

 

한림항을 포함한 평탄한 지형으로 한림천이 흐르고 있으며, 한림항을 중심으로 공업과 상업, 운송업, 기계 수리업 등이 발달하여 인근 마을의 발전에도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70년대 매일시장의 개장과 더불어 동쪽으로 애월읍 일대의 산간 마을과 서쪽으로 한경면 일대에 이르기까지 한림2리와 더불어 생활권의 중심이 되고 있다.

 

 

 

- 한림2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알한술이다. 19세기 말부터 알한술 지역을 한림이라 하였고, 한림(翰林)의 한()도 고유어 한[]의 음가자 표기이다. 당초 대림리의 한동네였던 것이 1884년 한림으로 분리된 뒤 독립된 마을로 발전해 왔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한림리가 되었으며, 1964년부터 한림의 속칭 안동네[內洞]와 맛동네[南洞]를 행정상 한림2리라 하였다. 195678일 한림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200771일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이 되었다.

 

한림1리와는 달리 농업 인구의 비중이 높은 편으로 감귤과 양배추가 주 소득원이며, 한림1리와 함께 한림읍의 중심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 한림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진동산이다. 진동산을 한자로 표기하여 장원동이 되고, 장원동이 한림3리가 되었다. 한림(翰林)의 한()도 고유어 한[]의 음가자 표기이다.

 

1963년부터 장원동을 한림리에서 분리하여 장원리라 하다가 1995년부터 한림3리가 되었으며, 200671일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이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5. 옹포리(瓮浦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독개 또는 덕개이다. 제주방언 덕은 바위 너설로 이루어진 포구 또는 하나뿐인 포구라는 뜻을 가진다. 1910년경에 옹포리(瓮浦里)로 표기되었는데, 옹포리(甕浦里)로도 적는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옹포리가 되었으며, 195678일 한림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20077월 제주특별자치도가 되어 제주시 한림읍에 속하게 되었다.

 

반농반어의 마을로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조 등의 곡물과 마늘·쪽파 같은 작물을 주로 재배하고 있으며 마을 전체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소득원은 소라와 전복을 비롯한 해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을에 한림고등학교가 위치해 있으며 해안을 따라 이어진 도로가 북쪽의 한림리와 남쪽의 협재리를 지나 금능리와도 이어진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